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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_없잖어'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10/03/08 100307
  2. 2010/02/22 그냥 글
  3. 2010/01/29 몰입과 필요와 불안
  4. 2009/12/18 Getting Older (1)
  5. 2009/11/03 Amor Amour Liebe Amo Love
  6. 2009/10/23 쓰자
  7. 2009/09/18 2008년 2번
  8. 2009/09/18 2009년 2번
  9. 2009/09/11 모기물린데가 존나게 존나게 진짜 존나게 가려움 (1)
  10. 2009/09/09 고1시절의 민족주의

100307

2010/03/08 00:19 from 아무것도_없잖어

 

세계 여성의 날 기념토론회 <낙태금지논란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다녀왔다! 슬기씨를 간만에 보고 무석씨랑 말을 놓기로 합의를 봄(그러나 우리 사이는 어색하기 짝이없었다). 뒷풀이로 술집에 가서 안주로 시킨 낙지소면을 혼자 전부 우적우적 처묵을 했다

 

 

'낙태는 윤리가 아니라 정치' 문제라는 말에 동의한다. 지금 이루어지는 낙태의 대부분은 사실 불법이다. 지금뿐 아니라 과거에도 물론 불법이었다. 과거에는 국가적으로 실행했던 출산율 하락 정책 때문에 단속을 하지 않았을 뿐, 지금은 국민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이유로 다시 낙태 단속을 엄하게 하겠다는 거다! 여성이 아이를 낳는(인구의 수를 늘리는) 도구로 취급받고 있다는 말이다.

 

나의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산모의 문제가 아닌 범국민적인 문제, 국가적 문제로 취급받고 있다. 즉, 출산의 주체가 산모가 아닌 국가가 된 거다. 지금 낙태법 문제의 쟁점은 산모의 생명권 대 태아의 생명권의 문제로 좁혀져 있다. 수정체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아야 하는가. 혹은 몇 개월이 되었을 때부터 태아가 생명체로 취급받을 수 있는가 따위의. 그러나 우리는 낙태를 금지했을 때 여성은 어떤 영향을 받는가 하는 문제 역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낙태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치적 맥락에서 볼 수 있어야 하고. 슬기 씨가 말했듯이 수정체가 몇 개월부터 하나의 생명으로 취급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에민 매몰되면 '생명체 담론' 바깥의 이야기를 볼 수 없게 된다.

 

낙태를 합법화했을 때, 처음에는 그 동안 물밑에 숨어 있던 낙태 건수들이 다 수면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낙태율의 통계가 늘어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낙태율이 줄어든다는 UN의 통계. OECD 중 낙태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나라는 현재 아일랜드와 폴란드, 스페인(독실한 카톨릭 국가들)과 한국이라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함. 현재 낙태를 적극 반대하는 측인 한나라당과 프로라이프 그리고 그 일당들ㅋ은 정말로 생명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치들인가? 결국 모든 통계는 낙태문제의 뿌리는 정치적이고 국가적인 이데올로기에 있다는 증거가 될 뿐 ^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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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글

2010/02/22 22:19 from 아무것도_없잖어

 

 

 

블러가 오아시스보다 좋아지고 있다 이제 나도 프롤레타리아에서 벗어나 차가운 도시여자가 되는것일까

 

스스로의 얄팍함을 감추기 위해서는 말을 아껴야 하는데 무언가를 쓰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

이럴 때 참지 못하고 뭔가를 써 버리면 나중에 지난 포스팅을 돌아보고 후회하게 되어 버리는데...

 

일요일에는 뭔가 견딜 수가 없어서 16만원을 들고 교보문고에 가서 탈탈 털어쓰고 돌아왔다 김

기영 DVD 컬렉션도 샀고 Graham Coxon - The Spinning Top이랑 Kings Of Leon - Only By The

Night 그리고 투피엠의 십만십 싱글이랑(아이조아) 사르트르도 샀고 푸코랑 하버마스 총서도

집어왔고 영화는 무엇을 욕망하는가(제목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를 샀음 하지만 지금은 OT에

가기 전에 빌려놨던 책들을 다 읽는 것이 급해서 읽지 못하고 있다! 낮에는 전에 읽었던 <영화 비평

어떻게 쓸까?>를 다시 읽었고 밤에는 <Design Beyond Design>을 다 읽는 것이 목표 그리고

내일은 읽다 만 트로츠키 자서전 <My LIFE>랑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다 읽고 도

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면 된다! ^0^ 그리고 내일이면 하던 과외도 끝내기로 했고 ㅇㅇㅇ

 

무언가가 되고 싶었어! 글을 쓰는 이유는 스스로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위안이라도 얻기 위해서

라고 썼었다. 하지만 똥만큼이나 의미없는 글만 쳇바퀴 돌듯이 계속 써대는 짓은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차라리 학기가 빨리 시작하고 뭔가를 정신없이 배우게 되면 좀 나을 것 같다 언제까지

똥같은 글만 키보드로 두드려대고 있을텐가!!!! 여태까지 찌끄려 썼던 것들은 감히 글이라고 부르기

조차 부끄러운 것들이다! 머릿속에 담아 두고 있는 몇 개의 단어들의 반복적 나열에 불과했다

깊이도 없고 생각도 없고 단순히 쓰기 위해서 썼던...... 쓸 때의 일시적 만족 말고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던 글들!!!!!! 때문에 스스로의 안에 다시 무언가를 채워넣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타인의 글이라도 읽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사실 여태 머릿속에 제대로 넣은 건 아무것도 없다

 

한시도 쉬지 말고 치열해져야 하는데 치열은커녕 계속 놀러다니거나 허세에 젖어 있기에만 바쁘다

 

오늘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를 봤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봤기 때문에 잭블랙이 나왔을

때 깜짝 놀랐음 ㅋㅋㅋ 하지만 영화는 영 실망스러웠다 뒤에 가선 지루함을 견딜 수가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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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학교 문제도 그럭저럭 해결이 되었다. 앞으로의 길에 대한 확신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확신이 없다. 확신하지 못한다. 정말로. 말하자면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 같은 느낌으로, 재미있으니까 시작하자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한다면......

 

 합격한다면 무엇인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합격을 했으니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합격 이전까지의 싸움이 그 합격이란 선을 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다시 한번, 온전한 스스로와의 싸움이라는 느낌이다. 영화비평이라니, 1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하지 못하던 것이다! 한예종을 생각했던 것이 겨우 작년 여름이었으니. 뚜렷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두렵기 때문, 이라고 1년 전의 나는 썼다. 그리고 선택을 마친(선택을 받은) 지금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에 대한 흥미를 놓아 버린다면? 언제든 새로운 것이 하고 싶다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 된다고 호기로운 척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 * *

 

 아빠와 함께 횟집을 나와서 군자역까지 걷고, 광화 교보문고로 갔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문득 스스로의 문어발 근성이라는 게 두려워졌다. 수학 좀 하다가 갑자기 외고 노선으로 갈아타고, 인문학 좀 하다가(여전히 하고는 있지만) 갑자기 독일어로 갈아타고, 잠깐 하는 척 하다가 다시 영화비평으로? 그렇다면 언젠가(혹은 머지않아) 또 다른 것으로 갈아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얘기 아닌가?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영화 그리고 비평에 대한 몰입이 필요하다는 느낌이다. 몰입! 아주 깊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1년 전에 비해 지금의 나는 생각이 더 없어진 것 같다. 아주 절실하게 몰입하고 싶다. 최근은 영화를 볼 때 오히려 비평과 분석보다 영화적인 이미지 그 자체에 관심이 가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는 조금 더 몰입이 되는 느낌이라 좋다. 이전에는 영화를 영화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문학의 한 부류로 보고 분석하기 바빴다면 지금은 조금 더 영화 자체에 다가가게 된 것 같은. 하지만 동시에 내가 영화를 분석하지 못하고 끝내 영화에, 그 이미지에 잠식당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 역시 떨칠 수 없어서.......

 

* * *

 

 얼마 전에 키치에 대해 인용했던 구절이 있던 책을 다 읽었는데 나는 그 책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 자체를 사랑하고 작품에 도취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도취되는 프티부르주아들에 대한 비판에는 공감.(프티부르주아라는 표현은 이제 적합하지 않지만)

 

 이제 과외를 한 뒤 서울집ㅋ으로 돌아가야하므로 이하생략 다음편에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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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ing Older

2009/12/18 15:58 from 아무것도_없잖어

 

 

자소서요

 

 

 

 한예종 1차를 통과하고 나서 하룻밤 동안 미친듯이 썼던 자소서를 다시 훑어보는데 내가 정신이 나갔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장은 다듬어지지 않았고 내용은 횡설수설............... 저걸(그나마 저것은 가장 덜 부끄러운 부분이다) 읽고 뽑아주신 교수님이 신기할 지경...... 감사합니다 교수님 제가 진짜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가 지난 반년 동안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다시 뒤적거리는데 내가 지난 반년동안 참 행복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의 환경 따윌 전부 배제하고 '내면적 상태'만 생각해 본다면 지난 19년 동안 제일 행복했던 건 고등학교 3년이고 고등학교 3년 중 제일 행복했던 기간은 지난 한 해...였던 것 같다. 합격하고 난 후이니 하는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2009년 한 해는 정말로 참 좋았다. 콘서트도 가고 미친듯이 영화보고 책 읽고 생각하고 글쓰고...... 치열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당시엔 그토록 치열해지기를 원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당시 나는 참 열심히 했다. 나는 살아 있었다! 요즘 잉여로 지내는 내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 다시 살아있자 영화를 보자 책을 읽고 글을!!! 쓰자!!! ㅠ.ㅠㅠㅠㅠㅠ

 

 아 오늘은 조나현이 우리집에 와서 잉여거리고 밥을 먹고 1학기 때쯤 주문했던 독일이데올로기 원서를 주고 갔다 ^_T 아 그러고보니 아직 공산당선언 원서정복도 제대로 못햇는데 독일이데올로기가 왔네...Aㅏ 도서관 책반납 오늘까진데 지금 머리감고 가려고 햇는데 왜이리 귀찮기만 한가 르몽드도 구독연장신청 해야되는데 내가 돈이 엄네? 돈이 없어서 도서관도 걸어가야하네?

 

 어쨌든 방학동안 정말로 치열하게 살자 잉여는 제발 이제 그만요

 

 

 

TAG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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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u déjà aimé

 


존나욘ㅋ이 요즘 사랑 얘기를 많이 한다고 불평을 했지만 오늘도 꿋꿋하게.. 난 사실 사랑ㅋ예찬자ㅋ잖아

 <사랑의 찬가>에서 에르완이 좋은 이유는 그 '돌아가지 않는' 사랑법 때문이었다. 사실 현실 세계에서 게이 남자애가 여친의 죽음을 겪은 남자에게 꽂혀서 이렇게 직선적으로 대쉬하는 것이 가능한가 싶긴 하지만(프랑스는 되나요???)... 당신의 신비로움이 좋다면서 길거리도 따라다니고 직장 앞으로도 쫓아가는 에르완의 그 거칠 것 없음이 정말로 정말로!

 항상 원하고 생각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에 있어 어려움을 겪어 왔다...... 나는 늘 말하기 전에 이것저것 재 보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말이 없는 것은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진심은 저 깊은 곳으로 침몰해 버리고 순간적으로 했던 그 생각들의 가장 중요한 알맹이는 세상에 나와 보기도 전에 혼자 소멸해 버리고 마는. 글을 쓰는 과정은 어찌 보면 그 찰나들을 조금이라도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사랑은 늘 받는 것보다는 하는 것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사랑받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머릿속 이론일 뿐이었고, 사실은 사랑의 감정을 계산하기 바빠서 미처 느끼지 못했을지도. 비비드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 이전에 비비드한 사람이 필요한지도. 생각한 것을 입 밖으로 내는 법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아? 좋아하면 그냥 좋아하는구나 싶어야 되는데 그 이전에 왜 좋은지 어디가 좋은지 무엇이 좋은지 따위를 따지고 있는 거다.. 결국 진짜 연애 진짜 사랑은 시작도 하기 전에 그 실체를 잃고. <사랑의 기술>을 다시 읽었지만 이번에도 답은 나오지 않았어

 이것이 바로 현대인들의 과도한 자의식이겠지ㅋ 내가 프랑스 문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르헤스인지 르 클레지오인지를 읽다가 현대 프랑스 작가들의 과도한 자의식에 대한 언급을 보고 흠칫했다.

 아아 어쨌든 나는 너의 비비드함을 원해......너의 직설법을 원하고
 늘 그렇듯 빨간색과 노란색이면 충분하다는 느낌이야
'내 심장을 위해서는 네 가슴으로 충분'하고 '네 자유를 위해서는 내 날개면 되'는 그것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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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자

2009/10/23 00:16 from 아무것도_없잖어

 

Draft on 2004-2

 

1. 조각난 이미지 ㅡ "영화를 진정 사랑할 수 있으려면 당신은 이미지 없이, 영화 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 연속된 이미지를 지탱할 수 없기에, 이미지가 조각난다. 때문에 영화를 조각나게 하지 않기 위해 주변의 이미지를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선 기존 이미지의 통제를 벗어나야 한다...?

2. 어쩌면 시선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영화를 읽는 능력 영화의 상징을 찾는 방식이 하나로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3. "주변의 이미지들을 모두 제거할 만한 힘을 갖추고 있을 때라야만 비로소 그 이미지들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쇄신하는 게 중요하단 뜻일까. 과거부터 축적해 둔 이미지-언어들의 해석에서 벗어나 늘 새롭게......

4. "문제는 독립성인 것이다" 다른 이미지-언어에서 독립된 시선을...가져야. 아마 그거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써야 한다, 고 늘 생각했다.

 

 쓰는 행위가 일종의 안도감을 준다.....라고 쓰는 와중에도 그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생각하기 위해 쓰는' 부류다. 쓰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좋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지 않은가? 어제 결과물이 없는 일을 꾸준히 하기란 힘들다고 썼다. 쓰는 행위는......머리에서 문장을 생각하고 손이 그것을 받아쓰면 즉각적으로 결과물이 나오는 거다. 내가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물증을 얻게 되는 것? 아마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가 위안이 되는 것이겠지 뭐든지 정신없이 써서 무언가 손이 지나간 흔적(연습장의 펜자국이든 혹은 포스팅이든)이 남는 것이 아마 좋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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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번

2009/09/18 21:16 from 아무것도_없잖어

 

2008년 2번문제

 

 

 The cinema's overwhelming desire to see, to analyse, its hunger for reality, is an act of concrete homage towards other people, towards what is happening and existing in the world. And, incidentally, it is what distinguishes "neorealism" from the American cinema.

 보고 분석하고자 하는 영화의 압도적 욕망, 리얼리티를 향한 갈구는 타인과 이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향한 구체적인 오마주적 행위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미국 영화와 네오리얼리즘을 구분해 주는 점이기도 하다.

 

 In fact, the American position is the antithesis of our own; while we are interested in the reality around us and want to know it directly, reality in American films is unnaturally filtered, "purified", and comes out at one or two removes. In America, lack of subjects for films causes a crisis, but with us such a crisis is impossible. One cannot be short of themes while there is still plenty of reality. Any hour of the day, any place, any person, is a subject for narrative if narrator is capable of observing and illuminating all these collective elements by exploring their interior value.

 사실, 미국적 위치란 우리 자신에 대한 안티테제다. 우리가 우리 주변의 진실에 대해 정확히 알고자 하는 반면, 미국 영화 안의 현실은 부자연스럽게 걸러져 '정화된' 뒤 한두 가지가 결핍된 채로 나오게 된다. 미국에서는 영화 주제의 고갈이 문제가 된다지만, 사실 우리에게 그런 것이 문제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여전히 수많은 현실이 존재하는 한 '주제가 부족'해지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나레이터가 내적인 가치를 숙고하며 축적된 요소들을 관찰하고 거기에 살을 붙일 수 있다면, 하루 중 언제, 어느 장소에 누가 있느냐 하는 것들은 전부 내러티브를 위한 문제가 된다.

 

 

 

 

 

번역은 망했어요 오랜만에 먹는 집밥에 감동해서 진짜 평소엔 죽어도 못비울 고봉밥을 게장과 스팸에 맛있게 처묵하고 푹 자고 일어났더니 이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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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번

2009/09/18 02:18 from 아무것도_없잖어

 

펼쳐두기.


2009년 2번 문제를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내 번역실력 너무.......좆같아서 눈물...........날거같다니........번역 너무 어려.......ㅂ............................................................................................. 뜻이 잘 안통해서 대충 의역으로 때우고 나니 남은 결과물은.......................................................

내가 영어............공부를...................................3년 안했기로소니.......................................

아 나 원래 못했나 아무튼 씨발 어떡하지 영어번역이 내 발목을 잡다니

 

내가 이제부터 영어공부를 해야한다 그말인가 ㅡㅡ; 요즘 학교에선 하루종일 자습을 시킴. 인강실은 열지 않는다. 무료하다 따분하다 심심하다. 심지어 책읽기마저 지겨워지고 있다. 학교가 아이들을 말려죽이고 있는 기분.

 

 

TAG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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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성이 없는 행위는 천박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글쓰는 친구와 얘기하면서 ㅇ예고의 아이들 중 일부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한다느니 돈을 내고 등단한 아이가 있느니 하는 말들을 들었다. 주류예술이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한 건 이미 오래 전부터의 일이긴 하지만, 한참 때묻지 않은 꿈을 꾸어야 할 청소년들이(그것도 예-고-에 다니는!) 이미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나는 정말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오로지 진정성만이 필요할 뿐이라고 굳게 믿었다. 비록 할리우드를 비롯한 거대 자본들이 영화계를 잠식하고 있긴 해도 그렇게 믿고 싶었는데 내 환상이 깨졌어 시발..

 

 대체 영화평론은 무엇인가? 영화를 만드는 이가 있고, 또 극장에서 그걸 보고 나름의 방식대로 영화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으니 그것으로 영화판은 돌아갈 만한데, 왜 굳이 그 중간에 끼어들어서 영화를 샅샅이 분석하고 해체하여 '아 재밌었어...ㅎㅎ'면 충분할 영화평을 천자 이천자 압박적인 양의 글로 써내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냥 영화는 영화다면 충분하지, 쓰잘데기없는 들뢰즈와 푸코와 라캉 따위를 끌어와서 영화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행위는 그저 자기만족적인 학술작업에 불과하지 않은가. 게다가 사실 많은 대중들은 평론가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평론가의 입맛은 대중의 입맛과 정반대라는 암묵적 믿음이 존재한다.

 

 그렇다. 많은 대중은 '영화평론'의 권위도 영향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이 시점에 - 네이버 검색창에 영화 제목만 치면 블로그의 영화평 및 별점이 몇백 페이지씩 줄줄이 뜨는 이 마당에 - 영화평론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나. 영화평론은 대체 뭘 하는 일인가. 어떤 태도로 영화평론을 대해야 하는가. 그리고 영화평론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앞으로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야 하겠다

 

 

 올드보이 독어버전이 보고싶당 간지나겠지

 

 그리고 정보가 필요한데 정보가 없어

 

 다들 수시를 쓰느라 바쁘다....경쟁률이 끝모르고 치솟는 걸 보면서 나는 작년에도 경쟁률 7대1이 못된 과에 가니까 붙지않을까 하는 자신감 생긴다니

 

 

TAG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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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으로 봐선 아마 고1때 썼던글이다. 봄~여름에 쓴것같으니 2년 좀 더 됐으려나

 

일단 좀 웃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작해야지

 

 

 

펼쳐둬


 

 

문체가 더럽게 좆같지만 넘어갑시다. 2년뒤에 지금 글을 보면 또 이런느낌일까 ㅡㅡ

 

 난 이때가 분명히 기억이 나..! 민족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책은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랑 고미숙 씨의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그리고 장정일의 '공부'. 그 당시는 진짜 혼란이었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국사를 제일 좋아하는 여중생이었는데 갑자기 이 책들에서 민족이 허구의 공동체니 근대가 되어서야 등장한 말이니 하면서 내 애국 쩌는 사고를 존나 뒤흔들어 놓는것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애국은 아무도 감히 건드려선 안되는 저 구름 위의 존재다. 감히 누가 '애국애족'이란 단어에 이의를 제기한단 말이야? 난 민족이란 게 단군할아버지 때부터 있어 왔던 말이 아니란 사실조차 인정하기가 존나 힘들었다. 위의 글을 보면 민족은 좆도쓸모없는 걸림돌일 뿐이라면서 극단적인 판단을 내린것 같지만 ㅋㅋㅋ 사실 저건 내가 마음속에서 계속 애국을 옹호해대는 본성 때문에 혼란을 겪으면서 일부러 극단적으로 말한것임.

 

 우리나라에서 민족을 논할 때 간과해서 안 되는 건 바로 우리나라의 역사적/지리적 특수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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